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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목장로칼럼] 샤론의 장미꽃 예수여 - Jesus, Rose of Sha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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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매진
댓글 0건 조회 1,132회 작성일 22-04-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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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처럼 달콤한 꿀잠 속에서도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죽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즐겨 노래하며 탄식한다는 이른바 [순수의 모순]이라는 꽃으로 슬프게 사랑받는, 그 꽃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빼고는 서양 문화나 문학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마치 달을 빼고 이태백이를 말하는 것과 같다는, 그 꽃은 무엇일까?
그 신비한 [그것?] 은 도대체 어떻게 살기에 슬픈 아름다움이라 불리어지는 것일까?
신사의 나라 영국사람들 마저도 사랑과 순결을 상징하는 이것을 나라꽃으로 삼은 까닭이 매우 궁금하다.

중국의 옛시인 朱慶孫은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이 꽃을 애찬했다.

"붉은 송이를 바라보니 단장 아름다움이며/
벌의 촉각을 살찌게 하는 粉이며/
나비 날개를 윤기있게 하는 빛이로다."

성경 아가서는 이것을 [하밧첼레]라 불렀다.
그것이 마치 동양에서 말하는 꽃중의 꽃- 모란처럼, 솔로몬 시대의 아름다운 花中王 - [로데]가 아니겠는가?
가지와 가시가 많은 백합과의 관상목들을 일컬을 진데, 개혁성경은 [샤론의 수선화]로 번역했지만, KJV 에서는 샤론의 장미 -Rose of sharon - 으로 불리는 예수님의 꽃. 그것이 바로 장미였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하고 흠없는 아름다움이 없듯이 장미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시없는 장미는 없는 것 같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Raron의 교회묘지에 장미를 사랑하다 못해 장미로 죽은 한 시인의 외로운 묘지가 있나니....조시는 흐느끼듯 이렇게 노래한다.

Rose,
oh, reiner Wil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ndem.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이것은 한줄 한 방울의 눈물의 묘비명이 아니다.
시인 릴케는 자신의 시에 헤아리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장미를 노래하고 있다.
그가 시처럼 쓴 일기에도, 편지에도, 싯적 메모에도, 장미라는 꽃은 어김 없이 등장하고 있다.
1900년에 쓴 어느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장미에 관한 글이 나온다.

"나는 새로운 애무를 고안해 냈다.
즉 장미 한송이를 감은 눈 위에 살포시 얹는다.
드디어 장미는 서늘한 느낌이 사라지고
꽃잎의 부더러움 만이 영상 위에 남는다.
그것은 일출 日出 전의 잠과 같도다."

시인 릴케의 삶에서 장미는 그의 일상의 전부였다.
장미를 심고 가꾸고,
장미의 향기에 사색하며,
장미로 시를 쓰고,
장미로 숨쉬며,
그것도 모자라 그는 끝내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었다.
시인 릴케는 정말, 왜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었을까?

그는 1921년 스위스 론江 게곡의 뮈즈의 성城 이라는 13세기에 지어진 古城 고성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뮈즈 성에서 그 유명한 [두에노 비가] [오르페우스 에의 소네트] 등 주로 그의 대표작들을 이곳에서 완성했다. [뮈즈의 성]은 당시 발레리를 비롯한 릴케의 수많은 문우들이 수시로 들락거린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1926년 9월이었다. 릴케는 프랑스 시인 친구의 소개로 코카시스 출신의 절세미인인 이집트 여인 [니멜 엘루이]를 소개받게 된다. 첫 눈에 반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심취한 릴케는 곧장 뜨락으로 달려갔다. 손수 가꾼 장미 몇송이를 여인에게 주려고 서두르다가 그만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장미의 가시에 찔린 상처가 곪은 나머지, 한쪽 팔은 쓸 수 없게 되었고, 이어서 다른쪽 팔도 마비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업친데 겹치는 격으로 릴케가 장미의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에 묻어있던 파상풍 균에 감염 된다. 파상풍 균의 특징은 릴케의 팔의 증상처럼 근육이 마비되고 뒤틀리는 증상이다 . 파상풍과 함께 앓고 있던 백혈병마저 악화되어 릴케는 밤낮 없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참기 어려운 고통은 [루 살로매]라면 능히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루 살로매는 누구인가? [루 살로매]는 19 세기를 살았던 여류 작가였다 . 릴케가 살로매를 만난 때는 그의 나이 22세 무렵이였다. 1897년 독일 남부 뮌헨에서였다. 릴케의 무명시절 그는 한 눈에 [살로매]에 반하고 말았다. 문인 야콥 바서만이 초대한 파티에서였다.

장미의 가시에 찔려 그 후유증으로 병상에 누워 있던 릴케는 1926년 12월, [살로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사랑하는사람이여! " 이렇게 간절하고 애타게 시작하여 "나의 사랑하는 장미의 사람이여."로 끝을 맺는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순진한 릴케에 비해 살로매는 로맨스를 뛰어넘어 남자편력이 화려한 여자였다. 살로매는 릴케 전후에도 철학자 닛체와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연인이기도 했다.

릴케가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장미 꽃송이들은 여전히 릴케의 관을 덮었다. 너무나 간소한 그래서 너무 한산한, 눈물이 날 정도의 외로운 장례식이였지만, 그러나 장례식은 슬프게 아름다웠다. "릴케의 관 앞에는 마치 하이얀 눈 속에서 피어나듯 장미꽃들이 피어 있었다..."고 카팬 바르커가 쓴 릴케의 전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새긴 비문은 [Das Leben ist eine Herrlicbkeil]ㅡ인생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기독교 찬송가에도 장미를 ㅡ소재로 한 너무나 아름다운 여러 가사들이 많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통499] ,443 이라든지, 샤론의 꽃 예수 *찬송 [89] 등, 이들은 요한복음 20: 18 , 아가서 2:1의 말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대체로 성경이 말하는 장미는 백합과의 다년초를 말하는 것 같다. 이들 장미는 순결과 신부를 상징하는 식물들로 가시나무 가운데 핀 백합화라든지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묘사되거나 솔로몬 시인들의 詩花로 즐겨 쓰인다. 아가서가 말하는 [샤론의 수선화]역시, 해석자에 따라 장미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구걸하는 할머니와 릴케와의 장미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화 詩畵로 전해지고 있다.

릴케가 빠리에 머물 때의 일이다.
산책길에 매일 동전을 구걸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날 릴케가 동전 대신 갖고 있던 장미 한송이를 건네 주었다.
할머니는 장미를 보고는 릴케의 빰에 키스를 했다.

며칠동안 안 보이던 할머니가 다시 나타나자 함께 산책하던 친구가 물었다.

"돈이 없어 할머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그러자 릴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직 장미의 힘으로!"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장미만 있다면, 그 장미의 힘으로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이겠지"


*****________다음[ 김영목 장로 칼럼]은 7월에 이어집니다

2022년 5월 9일

金 英 穆
김 영 목
[Ph.d, Th.d]

<수유제일교회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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